틀린 답
틀린 답
B와는 여전히 종종 싸운다. 어제는 들어오자마자 씻는 걸로 크게 싸웠다. 지난 번 내 생일 여행에서는 운전 습관으로 한나절을 싸웠다. 멀리서 보면 사소하지만 잘라서 단면을 보면 잔뿌리가 깊고 많은 문제들로 참다가 터지다가 화를 내다가 그랬다. 화를 내는 데 기력을 다 써서 힘이 없기도 했다. 다툼을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분명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열심히 방법을 찾았고, 실패했고, 다시 찾았다. 그러다 벽에 부딪힌듯 더 이상 맞춰갈 방법도 없어보여 함께 펑펑 울기도 했다. 그 모습이 웃겨 또 같이 웃었다. 우리는 취미도, 생각하는 방식도, 만나는 친구들도, 화를 식히는 법도, 좋아하는 영화 음식 음악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만 서로를 원한다. 사랑하는 것 빼고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 만났다.
싸움을 누적할 때마다 답은 선명해진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고 또 눈이 먼 척 하기 위해 입을 닫았다.
어제 일을 갈무리하고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우리는 또 싸웠다. 내게는 별 거 아닌 행동, B에게는 별 거 아닌 표현이 서로 상처가 됐다. 당신은 함께하는 시간에 또 싸우게 된 것을 슬퍼하는, 그리고 또 상처 받은 눈빛으로 지금 내가 다정한 해명을 해주길 바랐다. 나는 해명할 순 있었으나 당장 다정할 수 없었다. 당신은 내게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줄 수 없었다.
나는 대화를 멈추고 정답을 외치기로 했다. 이 문제의 정답은, 우리가 안 맞는 거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길 포기하면 안 싸울 수 있다.
나는 말했다.
사실 처음 말한 것도 아니었다.
너는 항상 똑같이 묻는다.
나 사랑해?
그러면 나는 거짓말은 못하겠어서 응, 했었다.
오늘은 대답을 안 했다.
너는 대답을 들은 셈 친 건지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여기까지는 익숙한 패턴이다. 나도 저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오늘은 더 보탤 말이 있었다.
우린 너무 달라서 힘들 거 알았어.
모르고 만난 것도 아니었어.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어.
그러나 최선을 다해봤지만 결국 안 되는 것도 있어.
안 맞추는 게 아니라 못 맞추는 지점이 있어.
너도 알잖아. 나도 알고 있어.
여기서 멈추고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더 쉬운 길이야.
나는 바보가 아니라서 이 관계의 정답을 알면서도 만날 수가 없어.
말을 끝내고 나니 슬펐다. 지금 입 밖으로 꺼낸 모든 말이 진심이었다. 그리고 당신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새드엔딩으로 정해져있는 마지막 화를 재생한 기분이었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무력한.
너는 내 말에 어떤 대답도 못했다. 그럴 것이다. 내 말이 맞으니까. 그러나 내 눈을 똑바로 보고, 그 안에서 슬픔과 아픔과 충격으로 요동치는 마음을 보여줬다. (이때 의문스러웠던 점은 체념보다 되려 확신이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내 말을 듣고도 무너진 적이 없었던 거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당신이 말했다.
그냥 바보 해라.
그냥 틀려.
예상 못한 대답이었다. (정말 속으로 예상하고 있던 답변 중 비슷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받아칠 수 없었다.)
황당해서 황당하지도 않았다. 웃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웃음이 났을 것이다. 더욱 어이가 없는 건 그 말을 듣고 한 여름에 눈 녹듯 녹아버린 내 마음이었다. 그 말이 좋았다.
근거 없는 말이 내 정답의 근거를 지워버렸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답을 외면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었던 것일지 모른다.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니까. 그래서 정답을 외면하려는 마음조차 지워버렸던 게 아닐까? 그런 내게 너는 빌미를 던져줬다. 그냥 틀리란다. 합법적으로 나쁜 짓을 허용 받는 기분이었다. 애써 정답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그럴 법한 이유는 없다. 그냥 네가 그래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냥 사랑하면 된단다. 나는 어떤 합리적인 생각도 사랑한다는 까닭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완강한 억지가 필요했던 걸까.
그래서 네가 더 좋았다.
마음은 합리적일 수 없다는 주제로 쓴 문학작품 같은 네가.